[칼럼] 국정원 채용 준비방법 ⑰ 비밀공작요원은 어떻게 양성하는가 - 민진규 교수(합격의 법학원)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9-02-02
공무원수험신문 · 고시위크 | 2018.12.03 16:4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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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격의 법학원 국정원 직무마인드 전임 민진규 교수

지난 8월 개봉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 ‘공작’의 주인공인 흑금성은 안기부의 대북 비밀정보요원이었다. 흑금성은 육군대학에서 교육을 받던 중 안기부에 의해 선발됐다. 북한으로 파견할 때 남한 사회에 불만을 가진 고급 장교 출신으로 위장할 경우에 신뢰를 형성하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2003년 개봉돼 1100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실미도’의 대북 공작요원들은 군인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다. 당시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거나 죄를 사면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선발했다고 한다.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선발했던 흑금성과 달리 이들은 북한으로 파견돼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성됐다.

전세계 비밀정보기관의 모태는 영국의 MI6와 MI5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해외정보수집과 비밀공작, 후자는 국내 방첩활동을 주로 수행하는 정보기관이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 정보기관인 OSS는 영국의 MI6를 모방해 비밀공작을 수행했고,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동맹국인 한국 등에 관련 노하우를 전수했다.

현대적 개념의 비밀공작은 영국이 표준을 정립했지만 비밀공작은 정보활동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사탄이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 뱀을 파견해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는 것도 비밀공작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수렵국가보다는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왕조사회에서 권력투쟁을 위한 비밀공작이 성행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미인계를 통해 왕을 암살하는 공작이 유행했고, 적의 주요 인사를 암살하기 위한 암살대나 적국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선전 공작대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한 국가 정책 중 하나였다. 현재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이 비밀공작요원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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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8월 프랑스 경찰에 체포된 자칼(출처 : abc NEWS)

▶ 체계적인 선발과 훈련만이 비밀공작의 성공을 보장해

체포되면 살인이나 간첩 혐의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비밀공작요원을 선발하는 것은 과거 신분제가 엄격했던 왕조사회조차도 쉽지 않았다. 하물며 개인의 인권이 존중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능한 비밀공작요원을 선발하고 육성하는 것은 정보기관의 난제 중 하나다. 정보기관이 비밀공작요원을 선발, 훈련, 파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밀공작요원은 암살, 파괴, 포섭, 유언비어 유포 등 공작의 목적에 부합하는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대 중국에서는 전쟁 고아나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을 선발해 암살과 같은 임무를 맡겼다. 적국의 왕이나 귀족을 상대로 아름다운 여성을 활용해 암살하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었지만 가장 효과적이었다.

적국의 중요한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폭발물을 다룰 수 있는 전문가를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과거에는 폭발물의 시한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임무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야 했다.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선전공작대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잔인한 고문을 견뎌야 하고 목숨을 바쳐야 하는 임무에 기꺼이 나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단순히 막대한 돈을 지불한다고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 애인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효성, 타깃에 대한 증오심 등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신분, 재산의 과다, 용모, 성별, 나이 등은 부차적인 고려사항이다.

둘째, 일단 선발된 비밀공작요원은 공작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훈련을 거쳐야 한다. 미인계나 미남계도 용모만 갖고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화술, 악기 연주, 춤, 주(酒)도, 소양 혹은 매너 등의 교육에 필요하다. 왕이나 귀족을 상대하려면 그에 걸 맞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걸음걸이, 복식, 예술이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암살이나 폭파도 단순한 임무가 아니다. 총, 시한폭탄, 독약 등을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타깃을 확인하거나 은신처에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폭발물 전문가라고 해도 공중이나 수중침투 훈련을 시키는 이유다. 반대로 침투 전문가라고 한다면 총과 같은 도구를 다루는 훈련을 거쳐야 한다.

훈련기간은 타깃의 신분, 지위, 성향, 공작의 목표 등에 따라 며칠이나 몇 주일이면 충분할 수도 있지만 몇 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정책결정권자나 귀족의 경우에는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적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위장용 신분을 확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이 요구된다. 얼굴이 예쁘다고 길거리에서 만나거나 신하로부터 상납 받은 여성을 첩이나 시녀로 들이는 바보는 없다. 다양한 테스트 과정을 거치면서 검증하기 때문에 웬만한 강도의 훈련으로 통과하기 어렵다.

셋째, 비밀공작요원의 선발과 훈련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밀하게 타깃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왕이나 주요 인사가 지나갈 장소를 미리 파악해 대기하거나 중요한 문서나 장비가 보관된 장소에 잠입하는 것은 내부의 정보원이 없으면 쉽지 않다. 주요 인사에 대한 보안이 철저하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고 타깃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비밀공작은 성공할 수 없다.

단기적인 전술을 중시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은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해 실천한다. 원수를 갚기 위해 몇 대(代)에 걸쳐 노력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용모나 재능이 뛰어난 자식을 비밀공작요원으로 선발해 부모와 같이 적국을 침투시켜 수십 년간 수면요원(sleeper)으로 본부의 공작 개시 지령을 기다리도록 하는 것도 드물지 않다.

공항이나 항만에서 출입국을 저지당하지 않도록 제3국을 경유하거나 위조 여권을 사용하는 것도 초보적 조치이다. 방첩당국의 검문을 기만하는 것이 공작목표를 달성한 이후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는 안전 장치에 해당된다. 어렵게 육성한 공작요원을 안전하게 퇴각시키는 것도 공작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비밀공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작목표에 부합한 인원의 선발, 공작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훈련, 은밀하게 타깃에 접근하는 방법 등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비밀공작은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은 이유도 준비과정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단 1명의 공작원이 1개 사단보다 더 큰 전공을 세우거나 수십만 대군도 감당하지 못하는 풍전등화에 처해진 국가를 구할 수 있는 것도 비밀공작의 매력이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에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비밀공작이 외교수단보다 효과적이거나 비용이 적게 든다고 판단해 선택하기 보다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는 이유다.

▶ 약소국이 강대국에 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자산이 비밀공작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명탐정 셜록 홈즈의 뛰어난 활약을 그린 소설을 읽고, ‘007 시리즈’로 대변되는 스파이 영화를 즐겨 보면서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일반인이 훌륭한 탐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탐정가이드북(예나루, 2010)을 집필했고, 여러 신문에 ‘탐정 셜록 홈즈’를 주제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유능한 탐정을 육성하는 것과 비밀공작요원을 훈련시키는 방법은 매우 유사하다. 일반인이 탐정을 동경하는 것과 같이 정보기관 요원이라면 특출한 능력을 갖춘 비밀공작요원이 되는 것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능력과 성과 뒤에는 혹독한 훈련으로 흘려야 하는 땀과 눈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미국 정보기관이 비밀공작요원을 육성해 테러리스트를 체포한 과정을 살펴보면서 훈련과정을 추측해 보자.

몇 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희대의 테러리스트인 ‘자칼’에 대한 얘기이다. 자칼은 1970~80년대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베네수엘라 출신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Ilich Ramírez Sánchez)로 일명 카를로스 더 자칼(Carlos the Jackal)로 불린다. 1994년 수단에서 체포될 때까지 신출귀몰하는 방식으로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검거망을 빠져나갔다.

결국 미국 CIA는 전직 테러리스트를 채용해 특수 훈련을 시켜 추적작전에 투입했고, 장기간 도주극을 끝냈을 수 있었다. 자칼을 추적하거나 체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미국의 CIA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DST, 영국의 MI5, 소련의 KGB, 독일의 BND,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도 자칼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종적을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CIA는 자칼과 유사한 성장과정을 거친 요원을 확보해 훈련시켜 추적을 시작했다.

훈련 과정은 요원의 심리적 동질화 교육부터 출발했다. 어릴 적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자칼의 심리적 상태를 파악해 도주경로, 은신처 파악 방법, 협조자 포섭전략, 살인수법 등을 예측하기 위한 목적이다. 정보분석기법 중 하나인 역할연기(Role Playing)를 적용한 것이다.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동네와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왕따와 폭력을 경험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 등으로 인해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자연스럽게 증폭된 것이다. 자칼의 성장환경과 가장 유사한 경험을 많이 한 테러리스트를 선발했다.

자칼이 주로 창녀촌이나 슬럼가를 은신처로 삼았던 것도 협조자를 찾기 쉬웠기 때문이다. 슬럼가에서 자랐던 경험을 통해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는 기법을 터득했고, 오히려 처참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선진 사회에 대한 테러의욕을 불태웠다. CIA도 선발된 요원을 다양한 현장에 보내 교육을 강화했다. 수십 권의 책을 통해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처참한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아랍국가들과 제3세계에서 테러리스트를 양성하는 것과 유사한 접근법이다.

결국 다양한 훈련과정을 거쳐 자칼과 유사한 사고패턴을 가진 CIA 비밀공작원은 자칼의 입장에서 테러 현장으로부터 도주로를 파악하고 추적을 시작했다. 흔적이 남는 호텔이나 공항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현금을 사용하며 밀입국으로 국경을 넘나들었다. 유럽을 넘어 북아프리카 국가를 거쳐 수단 슬럼가에 은신하고 있던 자칼을 체포할 수 있었다.

선진국 정보기관이 뛰어난 것은 성과로 입증된다.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비밀공작을 성공시키는 것은 유능한 요원의 선발, 훈련, 파견 등을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비밀공작을 수행할 수 있는 요원을 확보하는 것은 외국어에 능통하고 현지인과 외모가 똑 같은 요원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적절한 공작자산(asset)을 갖고 있지 않은 국가의 정보기관은 비밀공작요원을 양성할 수도 없다. 당연하게 해외에서 비밀공작을 수행할 엄두도 내지 못해 자국의 국가이익을 보호하거나 극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과 같은 정보 후진국은 외교나 군사적으로 약소한 국가가 강대국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자산이 비밀공작이라는 것을 인식해 비밀공작 수행능력을 확보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 계속 –

* 칼럼내용 문의 : 민진규 교수(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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